Wednesday, November 20, 2013

두 대도시이야기- 런던과 멕시코시티

                                런던 워털루 브릿지 2013년 10월 30일


오랜 멕시코시티 생활에 염증이 나서, 런던으로 갔다. 비교문화연구는 간편하고 단순해서, 게으른 탐색자의 작업을 만족하게 하니까.

10년만에 방문한 런던은, 내 불완전한 기억을 더더욱 불신하게 만드는 변신 그 자체였다. 1996년 런던은 전통이 숨쉬는 보수적인 도시였다. 지금은 그 본질이야 어떻든, 완연한 Cosmopolitan city, 그 자체였다. 거리를 오가는 70%사람은 외국인이였고 다양한 언어, 이국적인 음식이 가득찬 속도감있는 대도시로 바뀌여 있었다. 이제는 꾸리꾸리한 안개와 비 조차도, 이도시의 활기찬 에너지를 흐리게 할 수 없었다.

                                멕시코시티 zocalo 대성당 2013년 9월14일

올해는 멕시코시티에도 비가 많이 왔다. 그리고 추웠다. 그럼에도 런던의 날씨와 비교하면 멕시코시티의 날씨는 신이 준 축복이였다. 참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을 가진 도시이다.
그러나, 도시는 신이 만든 곳이 아니다. 인간이 만드는 곳. 정확히 말하면  Citizen이 만드는 공간이고 citizenship이 도시인프라와 상호작용하며 부단히 변화하는 곳이다.
물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도시인프라와 시스템이 시의 재정의 규모에 좌우되, 시민성이 우아해지거나 각박해지거나 그럴수도 있겠다.

분명 런던은 지난 백년간 영국 제국주의 혜택을 톡톡히 본 도시이다. 빅토리아시대의 붉은 영광이 도시곳곳에 그 자취를 남겨놨다. 그러니 황금을 훔칠려고 온 Hernand Cortes가 휘저어 논 아즈텍의 옛도시 멕시코시티와는 분명 다른 역사를 겪었다.

그래서 인가. 멕시코시티는 여전히 cosmopolitan city가 아닌,  Post-colonial city이다. 폴랑코나 꼬요아깐에 외국인이 많다고  국제적인 도시라고 할 순 없다. 그곳에 외국인들은 지하철을  한번도 안타는 돈많고 계급적으로 우위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니까.

도시를 걷고, 일상속에서 살아야 하는 , 평범한 개인으로서,
런던과 멕시코시티의 가장 큰 차이는,
시민성의 평등이 있느냐 없는냐의 문제이다.
런던 역시 자본의 양극화가 심한도시다. 그렇지만 미국의 도시나 멕시코시티처럼 그렇게 노골적이지는 않다. 멕시코시티의 시민은 완벽히 둘로 쪼개져있고, 물과 기름처럼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슬픈것은 가난한 시민은 불합리한 도시시스템에 대해, 항의도 안하고 그저 침묵을 한채, Ni modo... 이렇게 중얼거리고 만다는 점이다. 적어도 런던은 불만을 제기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유럽식 합리주의가 있다.
런던에서 만난 어느  정치적으로 다소 급진적인 민박집 주인은, 그래서 런던은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멕시코를 좋아한다.
그래서 여전히 인정하지 않을것이다. 도시란거 자체가 유럽적일 필요는 없다고, 그게 대안일수 없다고, 애써 런던과 멕시코시티를  좋은 것, 별로인 것이라는 이분법적인 공식으로 비교안하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묻게된다. 과연 좋은 도시란, 시민성이란 어떤 것이야 할까.

19세기에 쓰여진 제임스 조이스가 쓴 더블린 사람들을 읽고 있다.
거기서 영감을 얻는다면, 이 주제에 대해 조금 진척이 될수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