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anuary 13, 2021

피아노에도 감정이 있다.

 요즘은 피아노 연주를 많이 듣는다. 멋진 피아니스트도 몇 명 알게 되었다.

피아니스트가 건반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각각 다르다. 그 차이에 깜짝 놀랐다. 같은 곡인데도 정말 다르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공통된것, 피아노를 칠때 얼굴에서 이는 감정의 경련, 감정이 근육을 타고 바르르 떨린다. 


그렇다, 피아노에도 감정이 있다. 울고 비통해하다가 소리치고 열정적으로 이야기한다.

피아노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니, 눈물이 났다.

피아노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이별과 삶에 대해 울고 웃는데...

나는 이야기 없이 곧 다가올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눈물을 흘린다.

어느 북쪽의 골짜기에서, 코로나로 자가격리를 혼자 하면서, 눈물이 난다. 죽는다는 것, 그 사라짐에 대해. 기억은 살고 있는데... 기억이 있음에도 부재할 아버지에 대해 눈물이 난다.

Sunday, December 6, 2020

복수는 나의 것

 오늘은 하루종일 가족과 통화를 했고,

이어서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것(1979년)을 봤다.


인간의 불가해함.

그것에 대해 적고싶어졌다.


셋째언니가 게속 물었다. 내가 이해를 해야만해?

아니, 인간은 이해할 수 없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알아볼 뿐,

둘째언니가 말했다. 절대로 용서못해...

아니, 인간을 규정지을 순없다. 순간의 판단일뿐.


이마무라 슈헤이의 영화는 이해와 연관성을 철저히 파괴하며, 질서정연한 세상을 구축하고 싶은 욕망에 딴지를 건다. 그래서 의문도 들고 불쾌하기도 하다. 이해하고 싶어서 다른 블로그를 뒤지며 영화평을 읽으려 했다. 그 중 공감되는 언급하나, 쇼헤이 감독은 적어도 당혹감을 주는데는 완전 성공했다...


그리고 인간의 비열함과 불가해성, 그 모순들을 보여주므로서 찝찝한 기분을 계속 조장한다. 이곳은 부모는 딸이 강간당하게 방치하는 곳이며,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한 표정을 짓는 순간 목졸라 죽이는 우리가 믿고 싶은 아름다운 가치들은 모두 사라져버리는 모순의 땅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끝이라고 당당히 사형대로 가고, 화장한 뼈는 중력을 거슬러 낙하하지 않는 세계. 우리의 모든 상식을 불쾌하게 조롱하는 세계... 그래서 이 모든 부조리를 관조하게 만드는... 인간에 대한 실망과 기대를 모두 지워버리는, 일종의 뒤틀어진 카타르시즘을 선사한다.


그리고 나는 내 심연을 보고 싶었다. 이제 그만 스크린에 나오는 조연들을 관찰하며 혀를 차는 것을 그만두고, 자 너를 보라고. 

나도.   

죽음앞에서 덤덤하고 타인의 월권행위에 대해서는 오히려 흔들리는, 뭔가  논리정연한 마음이 없었다. 내 마음의 평화를 앗아간 것은 죽어가는 아빠의 욱신과 내장속에 도사린 암세포가 아니라... 자신의 입장과 이득에 서로 싸워대는 자매들의 행태가 더욱 신경이 쓰였고 평정을 잃었다.


아빠의 부재는 아직 슬프지가 않다.

하지만 내 생각이 침해당해 부재하면 슬프다.


아,,,모르겠다.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이, 이마무라 쇼헤이의 사이코패스 살인마와 그 아버지처럼, 질서라고는 없는 불가해한 존재이다.


그 와중에, 제목이 복수는 나의 것. 이라는 의미를 추정해놨다.

아.. 인간은 얼마나 연관/유추/논리/정연 을 사랑하는가.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 처럼 사실 제목을 의미와 꿰맞추는 것은 의미없는 짓인데...


그럼에도 추신으로 덧붙이자면,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복수 한 것은 영화초반 제국주의 군인이 휘두른 권위/ 세상의 질서였던게 아닌가 싶다...                                                                                                                                                                                                                                                                                                                                                                                                                                                                                                                                                                                                                                                                                                                                                                                                                                                                                                                                                                                                                                                                                                                                                                                                                                                                                                                                 

Saturday, November 1, 2014

Biutiful한 슬픔


해외에 있는 관계상, 개봉한지도 한참 지난 영화한편을 뒤늦게 보았다.
영화 한편이 거의 일년만에 글을 쓰게 한다는 것은 놀라운 힘이다. 먼저 감독과 편집자, 배우한테 경의를 표한다.

눈물도 조금 머금었다. 성인나이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코카인을 흡인하며, 죽어간다고 말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나 고독해보여서이다. 고독이라는 것이 나한테 그렇게 슬픈것이었을까. 고독을 모르고 산지 꽤 되었는 줄 알았는데. 그러나 그 고독은 좀 달랐다. 죽음 앞에 홀로 선 인간의 고독. 잔인한 현실속에서 죽음을 통보받은 사람만이 비로서 알수 있는 고독이니까 나같은 쁘띠 브르조와는 아직 모르는 것이다. 그 고독은 스산하고 공허한 겨울같다.

산다는 것이 그지같고, 매일매일이 고루하거나 혹은 쪼자나게 더러운. 그런 삶이 사실 대다수다. 불운의 아이콘처럼 계속 안좋은 일들이 터지고, 그러면서 어떻게 살아보겠다고 세상에 비비적대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우리의 이웃들이다. 영화는 우울할 정도로 계속 이 이야기를 한다. 그와 대조적으로 죽은 후, 눈 쌓인 자작나무 장면은 청량하다 못해 해방이다. 비루한 삶에서의 탈출자체가 천국이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평안한 마음이 든다. 세상사 고통이 결국은 지나가는 찰나의 것으로 느껴진다. 고통, 이것도 곧 지나가리라... 이 말만큼 희망적인 말이 또 있을까. 아... 운명을 개척하며 아웅바둥 살기보다는 관조하는 것이 더 맞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가 기껏 열심히 살았다고 하는 삶은, 결국 죽어서 올빼미가 토해내는 털뭉치나, 다른 짐승의 사체의 일부같은. 아무 의미없는 것들로 유산을 남긴다. 내가 오늘 쓰는 이 글은  일년만에 쓴 글이긴 하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나만의 의미없는 유희. 또 그럼 어때. 개의치 않는다.
오늘 잠깐 느낀 슬픔과  지금 마시는 약간의 알콜, 니코틴이면 족하다.

Thursday, July 3, 2014

고양이가 무릎 위에서 낮잠자는 시간

나는 항상 일상에서 무엇인가를 한다. 밥을 먹거나, 똥을 싸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한다던가 잠시라도 멍하니 있는 적은 사실 드물다.

요즘 내가 유일하게 잠시 숨돌리는 시간, 혹은 멍때리는 시간은 고양이가 내 몸위로 올라와 잠을 잘때이다. 잠을 깨우지 않기위해 잠시 하던것을 멈추고 주변을 바라보게 된다. 길면 한시간 반 짧으면 십여분 동안, 나도 고양이 처럼 아무 할일없이 가만히 앉아있는다.

그런생각이 든다. 인생은 사실 아주 단순하게 살아갈수 있노라고. 고양이처럼 먹다 자고, 그루밍하다가 멍때리고 그리고 다시 잔다. 그리고 그런 고양이 덕분에 나도 하루중에 아주 단순한, 그리고 조용한 시간을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않고 고양이의 침대가 되는 시간.

Wednesday, November 20, 2013

두 대도시이야기- 런던과 멕시코시티

                                런던 워털루 브릿지 2013년 10월 30일


오랜 멕시코시티 생활에 염증이 나서, 런던으로 갔다. 비교문화연구는 간편하고 단순해서, 게으른 탐색자의 작업을 만족하게 하니까.

10년만에 방문한 런던은, 내 불완전한 기억을 더더욱 불신하게 만드는 변신 그 자체였다. 1996년 런던은 전통이 숨쉬는 보수적인 도시였다. 지금은 그 본질이야 어떻든, 완연한 Cosmopolitan city, 그 자체였다. 거리를 오가는 70%사람은 외국인이였고 다양한 언어, 이국적인 음식이 가득찬 속도감있는 대도시로 바뀌여 있었다. 이제는 꾸리꾸리한 안개와 비 조차도, 이도시의 활기찬 에너지를 흐리게 할 수 없었다.

                                멕시코시티 zocalo 대성당 2013년 9월14일

올해는 멕시코시티에도 비가 많이 왔다. 그리고 추웠다. 그럼에도 런던의 날씨와 비교하면 멕시코시티의 날씨는 신이 준 축복이였다. 참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을 가진 도시이다.
그러나, 도시는 신이 만든 곳이 아니다. 인간이 만드는 곳. 정확히 말하면  Citizen이 만드는 공간이고 citizenship이 도시인프라와 상호작용하며 부단히 변화하는 곳이다.
물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도시인프라와 시스템이 시의 재정의 규모에 좌우되, 시민성이 우아해지거나 각박해지거나 그럴수도 있겠다.

분명 런던은 지난 백년간 영국 제국주의 혜택을 톡톡히 본 도시이다. 빅토리아시대의 붉은 영광이 도시곳곳에 그 자취를 남겨놨다. 그러니 황금을 훔칠려고 온 Hernand Cortes가 휘저어 논 아즈텍의 옛도시 멕시코시티와는 분명 다른 역사를 겪었다.

그래서 인가. 멕시코시티는 여전히 cosmopolitan city가 아닌,  Post-colonial city이다. 폴랑코나 꼬요아깐에 외국인이 많다고  국제적인 도시라고 할 순 없다. 그곳에 외국인들은 지하철을  한번도 안타는 돈많고 계급적으로 우위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니까.

도시를 걷고, 일상속에서 살아야 하는 , 평범한 개인으로서,
런던과 멕시코시티의 가장 큰 차이는,
시민성의 평등이 있느냐 없는냐의 문제이다.
런던 역시 자본의 양극화가 심한도시다. 그렇지만 미국의 도시나 멕시코시티처럼 그렇게 노골적이지는 않다. 멕시코시티의 시민은 완벽히 둘로 쪼개져있고, 물과 기름처럼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슬픈것은 가난한 시민은 불합리한 도시시스템에 대해, 항의도 안하고 그저 침묵을 한채, Ni modo... 이렇게 중얼거리고 만다는 점이다. 적어도 런던은 불만을 제기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유럽식 합리주의가 있다.
런던에서 만난 어느  정치적으로 다소 급진적인 민박집 주인은, 그래서 런던은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멕시코를 좋아한다.
그래서 여전히 인정하지 않을것이다. 도시란거 자체가 유럽적일 필요는 없다고, 그게 대안일수 없다고, 애써 런던과 멕시코시티를  좋은 것, 별로인 것이라는 이분법적인 공식으로 비교안하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묻게된다. 과연 좋은 도시란, 시민성이란 어떤 것이야 할까.

19세기에 쓰여진 제임스 조이스가 쓴 더블린 사람들을 읽고 있다.
거기서 영감을 얻는다면, 이 주제에 대해 조금 진척이 될수 있을까 싶다.
                                    

Friday, December 21, 2012

El dia ultimo del mundo de MAYA


21일... 마야달력이 끝나는 날, 멕시코에서 밤을 맞는다. 공교롭게 한국은 애동지.
내일은 치아빠스에 자원봉사겸 여행을 가고... 몇주전부터 시작된 알레르기로 몸이 근지럽고, 생리가 시작될지 배가 슬슬 아프다.
여전히 세상은 나와 함께 잘 돌아가고 있다.

애동지에 팥죽은 먹는 것이 아니라지만, 인스턴트 단팥죽을 하나 사놨다. 팥죽과 데낄라를 섞은 깔루아를 한잔 마시고 영화를 때리면서 잠을 청해야지. 지금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내 옆에는 좋은 남친이 있고. 설령 2시간뒤 세상이 망한다고 해도, 나는 혼자가 아니다.
그것만 놓고보면, 지난 몇십년간 잘살아 왔노라고 칭찬하고 싶다.

뭔가 너무 조용해서 재미가 없다. 좀더 드라마틱할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러나 일상이 여전히 이렇게 잘 유지된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겠다. 선거 결과가 아무리 내 맘에 안들어도, 몸이 계속 근질거려도, 내 남친이 팥죽을 잘못 데펴도... 또 몇년, 몇십년뒤에 잘 살고 있노라고 말할 순간이 올테니까.

Thursday, September 27, 2012

Historia Moderna en México 멕시코 근대사 간략정리



1810  
-Miguel Hidalgo y Costilla신부가  9월 16에 독립선언, 이를 '돌로레스의 절규'라고 함. 멕시코에서는 이를 이어 16일을 독립기념일로 제정하고, 9월 15일 밤 11시에 'viva mexico'를 외침. 이달고 신부는 민중봉기 이후 총살당함.

                                   Miguel Hidalgo: Mural de José Clemente Orozco


1813
-Jose Maria Morelos 신부의 독립투쟁. 아카풀코 점령.
-그러나 1815년 스페인군에 체포되어 총살당함.

Jose Maria Morelos en 50 pesos


1821
-스페인에서의 독립.
-Criollos 출신 스페인정부군 장교였던 Agustin de Iturbide가 정부군을 이탈하고 독립군에 가담, 독립이 되자 자신이 멕시코 황제로 오름. 그러나 1822'아구스틴 1'에서 10개월만에 사임, 이탈리아로 망명길.
-독립이후 Caudillo(토호, 지방유지)들의 지배, 1877년까지 56년간 2명의 황제, 독재자들, 대통령, 임시행정부가 통치. 새정부 평균 집권기간이 9개월일정도로 혼란.

1823
-Monroe Doctrine은 미국의 라틴아메리카에대한 영토확장의 시작이였음.



1836
-미국과의 국경분쟁으로 Texas주 양도.
-1835년 멕시코정부가 연방주의를 폐지하자 그 반발로 텍사스주가 임시정부차림텍사스주독립쟁취 후 1845년 미국합병.

1846~48
- 미국 포크대통령의 남서부지역에 대한 욕망. 1846 4월 미국과 멕시코전쟁발발.
-1847년 미국의 윈필드 스코트장군이 멕시코 베라크루즈 시를 거쳐 수도까지 점령, 차풀테펙성에서 사관생도들의 목숨바친 항쟁.
-미국과의 전쟁에 패해, Manuel Peña 정부가 미국과 Guadalupe Hidalgo조약을 체결하여 보상금 1500만 달러를 받고 캘리포니아, 네바다, Uhah, Arizona, New Mexico, Wyoming, Colrado 주 등 249만킬로제곱미터를 미국에 양도, 이는 현 멕시코영토보다 큰 면적임.

1855
-Benito Juárez 대통령 집권. 최초의 인디헤나 출신 대통령. 자유개혁 단행. 카톨릭소유 재산 몰수.




1857
-새헌법제정

1858
- 펠릭스 술로아가 대통령으로 추대된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간의 내전시작

1860
-12월 자유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났으나 내전으로 인해 국가재정 고갈

1861
-외채상환 및 이자지불중단선언
1862
-외채상환국이였던 프랑스,영국, 스페인 3연합군이 베라크루스에 상륙. 1863년 미국 견제와 라틴장벽을 쌓고싶었던 프랑스와 멕시코보수주의자들이 막시말리노황제추대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간의 갈등으로 내전 발생. 프랑스 개입.
-자유주의자란: 유럽의 정치과정, 기술발전, 지적자유의 수호. 교회와 국가 분리, 의무교육 실시, 투표권 확대, 무역과 이민 장려, 사회개혁, 연방주의 등을 주장. 19세기 후반부터 우세. 1850년부터 1900년 사이 대부분 국가에서 자유주의 정부가 들어섬.
-보수주의란: 전통적 가치관, 교회특권 옹호, 중앙집권주의자, 자유무역, 외국자본 유입 반대 등을 주장한 정치 세력.

1864
-프랑스는 멕시코 보수파의 지지를 받으며 합스부르크 왕국의 오스트리아 왕자 Fernando Maximiliano룰 황제로 추대, 전제군주국이 됨.

1865~1867
-프랑스 상대로 제 2의 독립전쟁

1867
-미국의 항의로 프랑스군 철수한 후 황제는 체포후 처형
-Benito Juárez가 종신 대통령으로 추대 됨. 그러나 내부 갈등으로 혼란을 겪다 1972년 병사.

1876
-Porfirio Díaz 장군이 쿠데타로 집권. 35년간 독재정권 유지. 이때 경제개발이 많이 추진 됨.



1877
-철도연장 578km, 전신선이 증가.

1898
-스페인은 미국과의 전쟁에 패함으로서 패권이 끝남

1910
-Revolucion 시작.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노동자, 농민의 혁명
-1911년 5월 Díaz는 프랑스로 망명. 이후 약 20년간 내란으로 정세 불안.



1929
-북부지방 개혁주의자들이 정권 장악.
-국민혁명당(Pártido Nacional Revolrucionario) 창당. 1946년에 제도혁명당(Pártido Revolrucionario Institucional, PRI)으로 명칭 변경

1934
-Lazaro Cardenas 대통령은 농지 개혁 및 노동자 권익 증진.
-석유와 철도 국유화. 이는 미국과의 관계 악화.
-오브레곤의 혁명 완수에 대한 의지는 호세 바스콘셀로스를 교육부 장관에 발탁해서  교육혁명을 실천한 것에 잘 나타남, 원주민을 비롯한 전국민의 기초교육제공, 벽화운동

1942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지원.
-상품 수출 증가. 산업 확대. 고용증대.

1946~1952
-Miguel Aleman Valdes 대통령 집권 기간.
-외자 도입 적극 추진. 본격적인 공업화 정책 추진.


1968
-10월 2일 틀라텔롤코광장 학살사건


1976~1982
-Jose López Portillo 집권 기간.
-주요 석유 생산국으로 부각. 그러나 석유만 믿고 외채를 마구 들여옴.

1986
-국제원유 가격 하락. 외화수입 감소. 경제난.

1988~1994
-Carlos Sarinas de Gortari 대통령 집권 기간.
-과감한 시장 개방 정책 추진, 민영화, 석유 노조 약화.

1994
-NAFTA 발효: 미국, 캐나다와의 북미 자유 무역 협정.
-Chiapaz 주 Zapatista 원주민, 농민들의 무장 봉기.
-여당 대통령후보 암살 사건.
-12월 외환 위기로 IMF가 지원.



1994~2000
-Ernesto Zedillo Ponce de Leon 대통령 취임.

2000
-7월 총선거에서 제1야당인 국민행동당(Partido Accion Nacional: PAN)의 Vicente Fox Quesada가 대통령 당선. 71년만의 정권 교체.

2006
-6월 2일  PAN의 Felipe Calderón Hinojosa 대통령 당선

2012
7월 1일 선거로 PRI-PVEM의 Enrique Peña Nieto가 대통령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