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는 1813년 독립은 했지만, 1824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멕시코 합중국'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를 정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1846년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해 텍사스를 포함한 국토의 반을 상실했으며 1862년에는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군이 침입하여 막시밀리아노 황제를 내세운 꼭두각시 제정이 선포되기도 하였다. 이는 인디오 출신인 베니또 후아레스 대통령의 주도로 제2의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 이렇든 멕시코는 독립 이후 50여 년 동안 외부로부터는 국가로서의 존립 자체를 위협받는 국가 누란의 위기를 겪었으며, 국내적으로는 정치 불안이 계속되었다.
1876~1910 El Porfiriato
34년 동안 멕시코를 통치한 Porfirio Diaz의 독재는 소수 엘리트를 위한 권위주의적 지배 체제 및 식민지 시대의 유산인 반봉건적사회 구조가 그대로 유지된 채 외국 자본의 주도로 추진되는 개발독재 근대화 정책의 시대였다.
1911~13 Francisco Madero
마데로는 디아스의 재선 반대파의 지도자가 되어 대통령에 입후보하고자 했다. 그러자 디아스는 마데로를 체포해 투옥하고는 그해 6월 부정선거를 치른 뒤 스스로를 당선자로 선언했다. 그러나 감옥에서 풀려난 마데로는 텍사스의 샌안토니오에서 '산루이스포토시 계획'(Plan de San Luis Potosí)을 발표하여 11월 20일에 반란을 일으킬 것을 호소했다. 반란은 실패로 끝났으나 여러 진영에서 혁명에 대한 기대가 불붙었다. 이리하여 1911년 봄 마침내 혁명군이 시우다드후아레스를 함락했고, 디아스를 축출하고 마데로를 대통령으로 선언했다. 마데로 정부는 처음부터 불안했다. 사파타는 마데로가 토지를 빼앗긴 인디언들에게 땅을 즉시 되돌려주지 않자 분개해 그에게 등을 돌렸다. 결국 그는 우에르타에 의해 대통령직에서 쫓겨나고 암살당한다.
판초 비야 (1911 ~ 1920)
북부에서는 파스쿠알 오로스코와 판초 Villa가 여기저기에서 군대를 끌어모아 정부군 요새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당시 북부 산악지역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이던 판초비야도 혁명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그후 그는 우에르타와 카란사와 정치적목적이 달라 대립하며 계속 전투를 가져야 했다. 카란사가 대통령이 된 후에는 미국이 이룰 조종했다고 판단, 1916년 3월 9일 15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미국 땅인 뉴멕시코의 콜럼버스를 공격했다. 미국은 재 반격했지만 결국 패하여 1917년 1월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퍼싱 장군에게 퇴각 명령을 내렸다.
에밀리아노 사파타 (1910 ~ 1919)
남부에서는 에밀리아노 Zapata가 지방의 '카시크'(cacique:농촌지역의 정계 거물)들에 맞서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에밀리아노 사파타 살라사르는 멕시코 혁명에 있어 거물이었다. 그는 눈에 띄는 멕시코 국가 영웅들 중 한명으로 여겨진다.: "에밀리아노 사파타"로 불리는 마을, 거리, 주택 계획들이 전국에 걸쳐 흔하다. 그의 인물상은 멕시코주화인 페소에서 사용된 상태이다. 사람들은 장기간 에밀리아노 자파타와 그의 추종자들에 관하여 다른 측면을 취했다. 상당은 그들을 무법자로 간주하지만 나머지에게 그들은 영세민을 위하여 일했던 진정한 혁명주의자들이었다. 사파타 지지자들의 대다수는 모렐로스 주와 주변 지역 출신의 토착 영세민들이었다. 그들은 유럽인 후손의 부유한 엘리트에게 땅을 거의 빼앗겼던 멕시코의 아메리카 토착민 인구를 위하여 공동체 토지 권리를 세우길 원했다.
1913~14 빅토리아노 우에르타 시대
군대를 지휘했던 우에르타가 쿠테타를 일으켜 마데로를 쫓아내고 대신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1914 ~ 20 베누스티아노 카란사
우에르타가 펼친 광기 어린 전제적 통치에 북부에서 반발해 대통령이 된 카란사는 1917년의 헌법을 제정하는 작업을 이끌었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독재권력을 부여했으며, 정부에게 부유한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할 권한을 부여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했으며 로마 가톨릭 교회의 권리를 제한했다. 카란사는 정적(政敵)들을 제거함으로써(사파타는 1919년에 암살당했음) 권력을 지켜나갔으나, 1920년 소노라에서 벌어진 철도 노동자의 파업을 분쇄하려고 했을 때 반발은 최정점에 다달았다. 카란사는 오브레곤을 비롯해 그를 지지하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버림을 받은 뒤 5월 21일 수도에서 도망쳐 나오려다가 살해되고 말았다.
Despues 1920
1920년에 혁명이 끝을 맺었다고 보지만, 그뒤에도 연방군과 여러 반란세력 사이에 이따금씩 폭력과 마찰이 벌어지곤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1934년에 개혁주의자 라사로 카르데나스가 대통령이 되어, 혁명기에 목표로 했고 1917년 헌법에서 합법화된 개혁들을 '제도화'함으로써 혁명을 마무리했다.
멕시코 혁명으로 말미암아 1929년 국민혁명당PRI 결성되었다.(1949년에 '제도혁명당'으로 개칭) 제도혁명당은 2000년 멕시코 총선이후 PAN정권으로 바뀔 때까지 권력을 장악하였다.
혁명의 의의
1910년에 발생한 멕시코 혁명은 中國의 辛亥革命보다 1년, 러시아 혁명보다 7년 앞서 벌어진 20세기 최초의 대규모 시민혁명(혹은 사회혁명?)이었다.
농지 개혁과 노동조건 개선 등을 내세우며 발발한 민중 봉기로 10년 간의 무장 투쟁 끝에 마데로의 노선을 계승한 정치적 민주주의 세력이 혁명의 승리자가 되었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와 농민의 요구에 부응하여 당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개혁적인 1917년 헌법이 제정-공포되었으며, 이에 따라 대농장제가 해체되고 채무 노동제(peonaje)가 폐지되었다. 그 결과 대농장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던 카우디요(caudillo) 지배 체제가 붕괴되었으며, 이후 혁명을 '제도화'한 '소노라 집단(Grupo de Sonora)'과 카르데나스[L zaro C rdenas]의 통치 기간을 거치면서 멕시코는 새로운 근대 국가의 기반을 확립하였다.
출처: 다음사전, 위키백과 외 다수의 블로그 짬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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