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te blogge es un trabajo de campo en Tijuana. soy una antropologa muy floja, lo empiezo para realizar mi creación fuerte. Voy a escribir tres idiomas, Espanol, Ingles y Coreano para que expenda a los sentidos. This blogg is a laggard anthropolosist's fieldnote to investigate in Tijuana,Mexico, I'm korean but I will try to write 3 lenguages, English, spanish and Korean for extension of the sense. 멕시코 띠후아나에서 어느 게으른 인류학도의 필드노트입니다. 언어는 영어,스페인어, 한국어 세가지로 갑니다~ 그럼 좀 부지런해지지 않겠어요?
Saturday, March 3, 2012
한인회장 인터뷰
띠후아나 이주 한인 2세대이자, 대한민국정부하 이민 1세대.
Playas de Tijuana의 StarBucks에서 약 한시간 반 정도의 첫인터뷰.
-인터뷰 내용
-성장과 가족: 1944년 8월 23일 만주 자모수에서 출생. 부모님은 함경북도 북청의 상인출신으로 4형제중 셋째로 태어남.
-한 개인으로서의 이주정착 과정: 해방후 북한으로 왔다가 45년 서울로 남하, 1.4후퇴때 부산으로 피난을가 유년시절보냄. 초등학교이후 서울로 다시 상경해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에 입학. 1972년 26세때 멕시코친구의 추천으로 멕시코로 유학, San Luis Ptosi에서 중남미지역연구로 수학. 6개월후 멕시코시티로 이주하여 UNAM에서 유학생활하며 대사관에서 근무하다가 학업을 중단하고 1974년 띠후아나로 취업이주. 당시 재미교포였던 송순식(1920)의 사업을 도와 공장관리인으로 취업. 1970년대 띠후아나는 자유무역지대로서 관세의 혜택이 있었음. 당시 송씨도 이러한 국경지대의 잇점을 이용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포목수출업(태권도복원단)을 함. 그곳에서 1년간 일하다 1975년 결혼하여 친구와 함께 가전제품소매상사업을 함. 70년대 중반 멕시코경제는 가히 버블경제라 일컬을 만큼 경기가 좋았음. 특히 통관의 잇점을 활용한 경제활동 활발. 밀수입(띠후아나-멕시코시티)그 당시의 활발했던 경기는 다시 오지 않았다고 회고. 이후 1980년대 경기가 추락했다고 봄.
-명예 영사로서의 활동: 한인이주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대기업들의 투자진출을 위한 조사가 활발해졌던 1980년대 후반, 안내자로서 역활을 이행. 교류와 이주의 개척자.각종 밀입국자들의 다각적 문제해결이나 한인민사소송에 도움.
-띠후아나 한인사회 확대를 위한 노력
-Henequen한인 후손과의 관계와 한인교회커뮤니티와의 관계: 현재 띠후아나에 거주하는 한인은 약 200여명정도. 한인후손은 통계를 낼수 없으나 약 2,000여명으로 추산. 중간자적인 관계 혹은 고리로서 매개체 역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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